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랄하고 자빠졌네 (문단 편집) === 이후의 상황 === || {{{#!wiki style="display: inline-block; border-left: 10px solid #E3E8E4; margin: -5px -10px; padding: 14px; text-align: left" {{{-1 [[세종(용비어천가 시리즈)|세종]]의 독백: 광평아 난 이리 하였다. 앞으로 네가 어찌된다 해도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, 참아낼 것이다.}}}}}} || 경연장에서 돌아와 뒤늦게야 광평의 생사를 확인한 세종은 주저 앉으며 안심해하다가도 이런 자신의 선택을 가지고 내기를 한 광평과 채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도 보인다. 또한 광평과 있던 그 사이에 세종이 만들고 있는 글자의 우수성과 아들인 광평의 목숨보다도 새로운 글자를 포기하지 않은 세종에게 감복한 채윤은 약속대로 완전히 세종의 사람이 된다. 이 뒤로 이어지는 채윤의 활약상을 보면 세종에게 있어서는 [[천군만마]] 그 자체다. 하지만 이렇게 힘겹게 돌아온 광평은 19화에서 한글을 배포하기 위해 활자소에 있다가 윤평에게 납치당하고, 이후 글자와 관련해 여전히 굳건한 세종을 동요시키려는 정기준에 의해 결국 살해당한다. 그리고 정기준은 그 시신을 궁으로 돌려보냈는데, 이를 본 세종이 '차마 믿지 못하겠다'며 광평의 팔을 계속 머리 위로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장면 뿌리깊은 나무의 대표적인 명장면이다.[* 참고로 이 씬은 원래대로라면 그냥 광평의 시신을 태운 가마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이었지만, 한석규의 요청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. 원숭이들이 동료의 죽음을 그렇게 확인한다는 것에서 따왔다고.[[http://m.ksmnews.co.kr/view.php?idx=2599|#]]] 광평의 죽음 이후로 세종은 오열과 절규를 하며 채윤에게 마저 칼을 겨누는 등 완전히 맛이 가버린 모습을 보인다. 물론 채윤이 대업을 완성해야된다며 충언을 일갈하자 힘겹게 다시 정신을 차리지만, 가끔씩 광평이 언급되면 여전히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며 겨우 분노를 참아내는 모습을 보이는 등 결국 광평은 세종에게 아픔과 [[트라우마]]의 [[아킬레스 건]]으로 남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